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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 공유화 운동[2024 곶자왈 소식지 미리보기] 곶자왈과 문화 ① - 홍일화 작가 인터뷰

2024-12-23

[곶자왈과 문화 ① – 홍일화 작가 인터뷰]



캔버스에 옮긴 야생 숲의 신비로움

홍일화 서양화가


작품을 보고 있자면 산에서 길을 잃어버린 소녀가 미지의 숲을 마주한 듯한 장면이 떠오른다. 마치 애니메이션이나 소설의 한 장면처럼 관람객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홍일화 작가는 가시숲, 가시덤불, 가시빛, 들풀, 볕뉘(나뭇잎과 나뭇잎 사이에 들어오는 햇살) 등 곶자왈이 가진 야생 면면의 신비로움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Q. 한 해의 반은 프랑스에서, 나머지 반은 용인(작업실 소재지)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데, 곶자왈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2018년에 키아프(KIAF, 매년 코엑스에서 열리는 글로벌 아트페어)에서 만난 전 주프랑스한국문화원장님께서 제주조각공원 대표님을 소개해 주시면서 저도 곶자왈에 대해 알게 됐어요. 20년간 여성의 초상화를 그리다 보니 인물의 실제와 다르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자연스러움’을 갈망할 때였죠. 마침 제주조각공원 대표님의 제안으로,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작업실로 리모델링해 4개월간 상주하며 곶자왈을 그린 것이 시작이에요. 그때 완성한 작품들로 제주조각공원 전시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어요.


Epine P.E 1104, 363.6×227.3cm, oil on canvas, 2021


Q. 20년간 인물화만 그리셨는데, 곶자왈에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길래 작품 소재가 ‘인물’에서 ‘숲’으로 바뀌게 된 걸까요?

곶자왈을 만나기 전에 저에게 숲은 수목원 개념이었어요. 사람의 편의를 위해 길을 닦아놓은 휴식 공간인 거죠. 우리가 아는 산도 땔감이나 목재를 위해 벌목하고 1970년대 나무 심기 운동으로 사람이 심어서 조성한 산이잖아요. 그런데 곶자왈은 야생의 모습을 간직한 숲이었어요. 곶자왈에서 첫날 잠을 자는데, 작업실을 휩쓸고 가는 나뭇가지 소리와 야생동물 소리가 공포스러울 정도였죠. 첫 한 달간은 작업을 못했어요.

그러다 곶자왈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자는 생각으로 매일 걷기 시작했어요. 때마침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는데, 새싹이 돋아날 때 숲에 분홍 띠를 두른 듯 붉은 기운이 감돌더라고요. 제가 아는 자연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어요. 초록색으로 바뀌기 전에 붉은색을 머금는 곶자왈을 보면서 붉은 피와 같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어요. 그 잔상이 남아서인지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더라고요. 인물과 닮게 그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니 그림을 그리는 동안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Epine. Gotjawal 0603, oil on canvas, 520×194cm(each 130×194cm×4), 2023


Q. 작품을 보면 곶자왈의 가시나무, 가시덤불을 자주 그리셨는데, 특별히 가시에 주목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가시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자연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곶자왈의 숲을 탐험할 수 있는 시기가 연중 4~5개월 정도 되는데,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가시덤불이 마치 벽처럼 펼쳐져 있어요. 짙은 숲속의 장벽 같은 거죠. 위험을 무릅쓰고 덤불을 헤치고 들어가면 연약한 동식물을 발견할 수 있어요. 놀란 노루가 후다닥 도망가죠. 가시는 연약한 동식물이 가진 최선의 방어책이었던 거예요. 만약 가시가 공격적이었다면 제 그림 속 가시도 공격적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가시덤불은 인간에게 얘기하죠. ‘있는 그대로 봐주세요’라고요. 헤치지 말고 그대로 두어달라는 자연의 메시지가 바로 가시인 것 같아요.


Glowing Thorns 0425,0426,0521, oil on canvas, 520×162cm(each 130×162cm×4), 2023


Q.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작품이 새롭게 보이는데, 작품을 조금 더 흥미롭게 보는 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나무의 선을 보면 더 흥미로우실 거예요. 자연에는 직선이 없어요.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곡선이 나무에 있거든요. 특히 곶자왈의 곡선은 나무 뿌리가 현무암을 잡고 올라가면서 생성된 곡선이라 또 달라요. 흙이 풍부하면 나무가 뿌리를 깊게 내리는데, 곶자왈의 나무는 돌덩이인 현무암을 잡고 버티면서 뿌리를 내리니까 판근(땅 위에 판 모양으로 노출된 뿌리)도 근육처럼 우락부락한 곡선이에요. 뿌리를 내리는 데 에너지를 다 쓴 나무가 올라가는 힘이 부족하다 보니 올라가다 다시 떨어지고 다시 올라가면서 곡선을 만들어요. 열악한 환경에서 살기 위해 대여섯 개의 나무가 엉켜 자라기도 하고요. 이러한 곶자왈 나무의 곡선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어 대작(大作)을 그리는 편인데,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마주친 풍경과 같아 무섭다는 관람객분들도 종종 계세요.(웃음)


Gotjawal P.E 0507, 363.6×227.3cm, oil on canvas, 2021


Q. 곶자왈이 아닌 다른 숲도 많이 가보셨을 텐데, 꾸준히 곶자왈을 캔버스에 담게 되는 원동력이 있을까요?

‘공생(共生)’ 때문인 것 같아요. 사람의 행동 중 지구에 제일 안 좋은 행동이 저는 ‘분리’라고 생각해요. 인간 구역, 자연 구역을 나눈 후에 편리를 위해 지구를 바꾸고 있거든요. 그런 것이 없는 곶자왈은 아직 서로 뒤얽히며 공생하는 매력이 있어요.

우리나라와 유럽의 여러 숲을 가봤는데, 유럽에는 천 년 된 숲도 많은 반면에 곶자왈은 아직 초년 숲이에요. 곶자왈의 터는 오래됐지만, 과거에는 나무를 잘라 땔감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더는 땔감이 필요하지 않은 시기부터 숲을 이뤘거든요. 그래서 땅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나무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어요. 유럽의 오래된 숲은 이미 서열 정리가 끝났기에 강자와 약자, 살 수 있는 식물과 없는 식물이 구분되어 있는데, 곶자왈에서는 절대 강자 없이 공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Q. 곶자왈에 애정이 깊으신 만큼 작가님께 곶자왈은 남다른 존재일 것 같은데, 어떤 의미인가요?

곶자왈은 저에게 깨달음의 공간이에요. 앞서서 자연의 ‘공생’에 대해 얘기했지만, 그전에 ‘다름’에 대해 먼저 얘기하고 싶거든요. ‘다름’을 얘기하면 흔히 ‘틀림’으로 해석하잖아요. 인간의 기준으로 자연을 ‘틀림’이나 ‘생태 교란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는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는 ‘다름’을 얘기하고 싶어요. 각자 다른 이유로 존재의 가치가 있는 자연처럼요. 그런 의미에서 곶자왈은 언제나 저에게 다름을 깨우쳐주는 존재 같아요.


미디어 아트와 접목해 제주 아르떼뮤지엄에 전시한 Gotjawal 100, 910×194cm, oil on canvas, 2019


대담자 이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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